비엔나, 벼룩 시장 구경하기
비엔나 거리에는 종종 벼룩시장이 서곤 한다. 그 중에서도 5월 초에 Neubaugasse에 서는 이 벼룩시장은 지난 시즌의 이월 상품이나 수공예품을 파는 벼룩시장으로 저렴한 가격보다는 질좋은 상품을 구매하기에 더 적합한 벼룩시장이다. 물론 가판대 상인들도 많이 나오므로 저렴한 물건들도 있기는 하다. 사실 한국에서는 벼룩 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뭐 꼭 물건을 사야하는 사람만 구경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어떤 물건들을 파나, 분위기는 어떤가 구경이나 해볼겸 Neubaugasse로 향했다.
주말 오전에 실컷 늦잠자고 점심 때가 다 되어서야 나갔더니 이미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 나라 재래시장 같이 맛있는 냄새도 여기저기서 났다. 떡볶이나 호떡 같은 거 팔면 참 좋겠는데. 그런 건 없지, 당연히. 그래도 소세지라든지 통닭 바베큐라든지 하는 것들이 굶주린 나의 미각을 자극했다. 아침을 제대로 안 챙겨 먹고 가서 배가 좀 고팠지만 일단 시장을 먼저 둘러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오랫동안 수집한 레코드판, 의류 브랜드들의 이월상품, 그리고 오스트리아 전통의상인 Dirndle(딘들)까지 정말 많은 종류의 물건을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 Dirndle(딘들)에 관심이 있어서 몇 군데에서 구경을 했는데, 가격이 기본 200~300유로였다. 뭐 전통 의상은 수제품이라서 그렇다나. 보기엔 무슨 인형놀이할 때 갖고 놀던 옷 같이 생긴게 더럽게 비싸다. 그래도 언젠간 꼭 한 벌 사고 말리. 시장 중간쯤에서는 뿔이 잔뜩 나 보이는 여자 아이가 전통 의상을 입고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었다. 누가봐도 엄마 아빠가 등떠밀어서 나온 것 같은 표정. 그 툭 튀어나온 입이 더 귀여웠는지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가 발길을 멈추고 연주에 맞춰 박수를 쳐주었다. 그 날 수입 좀 괜찮았을 거다, 이 아이.
그리고 나서 한동안 쇼핑 삼매경에 빠졌다. 한발짝 움질일 때 마다 다른 것들을 팔아서 100m 전진하기도 힘들었다. 같이 간 남자 친구들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쟤네 뭐하나..’ 옆동네 불구경 하듯 서 있었지만 여자들끼리는 그런 거 제대로 살필 겨를도 없었다. 대단한 쇼핑을 한 건 아니지만, 원래 이런 곳이 아기자기하게 구경할 게 더 많은 법. 모르면 가만 있으라.
그렇게 뭐에 홀린 사람처럼 시장 구경을 끝내고 나자 허기가 확 몰려왔다. 마침 어디선가 강렬한 카레 냄새가 났다. 안 먹으면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기에 당장 달려가서 제일 긴 메뉴로 선택. 닭고기, 야채, 아무튼 거기 있는 거 다 들어가 있는 카레로 주문했다. 냄새에 비해서 맛은 그저그랬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카레 한접시를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그렇게 5분 만에 사라진 나의 6유로 50센트. 뭘 좀 먹으면 힘이 솟을 줄 알았는데 왠일인지 더 피곤해졌다. 그래서 그 날 쇼핑은 이걸로 끝. 두 시간 남짓한 짧은 외출이었지만 정말 좋은 구경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