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츠(Graz)의 상징물, 시계탑(Uhrturm)
여느 도시나 다 그 도시를 상징할만한 상징물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파리에는 에펠탑이 있고, 피사에는 피사탑이 있지 않나. 그라츠에는 바로 이 시계탑(Uhrturm)이 그러한 상징물이다.그라츠에 관광 하러 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이 곳에 와서 사진 한장 씩은 찍고 가기 마련. 여기까지와서 시계탑을 보고 가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발걸음에 흥이 실렸다.
시내에서 타워로 올라가는 길은 도보로 올라가는 언덕 쪽 길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법 두 가지가 있는데, 도보로 올라가도 10분 15분이면 충분한 거리이므로 엘리베이터는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당신이 사지가 멀쩡한 젊은이라면 더더욱. 언덕을 오를 때 경치가 얼마나 예쁜지, 나무들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서 있는지. 그것 또한 충분히 아름다운 구경거리이므로 꼭 감상해야 된다고 본다. 언덕을 끝까지 오르면 이 지형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 우리 나라로 치면 산성.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참 어딜가나 다 비슷한 거 보면 정말 신기하다. 사람 사는 곳은 정말 다 똑같은 가보다.
산성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시계탑이 보인다. 장난감처럼 예쁘게 생겼다. 우리가 읽는 동화가 서양의 것이다보니 그런 인상을 받는 것도 있겠지만, 이런 아기자기하고 예쁜 유럽의 건물들을 볼 때마다 마치 동화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설명을 읽어보니 이 시계탑은 그라츠에서 가장 높은 건물 일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래 된 건물이기도 하단다. 몇 백년도 더 된 시계탑이 저렇게 아름답게 잘 보존 되어 있는 걸 보니 참 부럽다.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옛 건물들은 다 어디 간 건지. 개발이다 뭐다 다 허물지만 않았어도 정말 우리만의 독특한 것을 잘 보존할 수 있었을텐데, 돌이켜보면 우리가 참 무지했다. 다른 관광객들과 마찬가지로 시계탑 앞에서 친구들과 인증샷을 남겼다. 버스데이 걸을 위해 독특하게 찍어야 된다며 굳이 무거운 나를 들어올렸다. 아, 진짜, 창피하게. 안돼 안돼 하다 찍혀버린 어정쩡한 샷. 그래도 지나면 다 추억이겠지.
사진에 보이는 시계탑 뒤쪽으로 가면 이런 풍경을 감상할 수가 있다.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지는 아름다운 시티 뷰. 파랗게 높아있는 하늘과 함께보니 더 아름답다. 그리 넓지 않은 그라츠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두 번째 사진 중간에 유독 눈에 띄는 현대식 건물은 1999년 그라츠의 Old Town이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에 지어진 미술관으로 Peter Cook와 Colin Fournier이 디자인 했단다. 심장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데, 뭔가 주변 경치와 딱 어울리지는 않는 느낌이다. 보는 눈은 다 똑같았는지 이 건물이 지어질 당시 고풍스러운 주변 경치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냐며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 뭐든 완벽한 게 어디있나. 이 건물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라츠는 그라츠만의 매력을 가졌겠지.
거리 관광에 이어서 시계탑까지 올랐더니 어찌나 기운이 빠지고 목이 마르던지. 다행히 시계탑 위로 카페가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정말 멋진 뷰를 가진 최고의 카페인데, 불행히도 그 멋진 뷰를 가진 최고의 자리는 다른 손님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해 있었다. 무슨 가족 행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밴드까지 불러서 난리 법석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오스트리아 전통 음악도 듣고, 딘들을 입은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면서 노는 모습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 나라로 치면 누구 생일 때 한복 입고 아리랑 부르는 건데, 오스트리아라서 그런지 내 눈에는 신기하고 멋져보였다. 근처 농장에서 바로 받아서 판다는 사과 주스를 한 사발 했더니 갈증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하아, 내겐 하루가 아직도 남았으므로. 얼른 얼른 움직이자.
시내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올라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길로 내려왔다. 굳이 말하자면 지름길. 마지막 사진 안 쪽으로 보이는 동굴 같이 생긴 곳이 시계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곳이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정말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이니, 어디 다쳐서 아픈 게 아니라면 그냥 올라가자. 이제 무어섬과 몇 군데만 더 돌아보면 관광도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 배도 고픈 것 같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입이 댓발 나와서 힘들다고 찡찡 댔겠지만 이 날은 그냥 너무 행복해서 그런 것도 모르고 정말 열심히 걸어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