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동물원, Tiergarten Schönbrunn (Vienna Zoo)
마음이 지쳤을 때 가면 좋은 곳, 로맨틱한 데이트를 즐기기에 적합한 곳,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천진난만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 바로 동물원이 아니겠나. 어릴 때 단체 소풍이나 견학으로 동물원을 가면, 신기하고 즐겁기 보다는 부산하고 짜증이 났던 것 같다. 내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더운 날 냄새 나 죽겠는데 줄 맞춰서 걸어야 하고, 더 보고 싶어도 선생님이 가자고 하면 그냥 지나가야 되고, 뭐 그런 것들이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가 동물원은 어른이 되고 난 지금에서야 더 가고 싶고, 생각나는 그런 곳인 것 같다.
비엔나에 있으면서 꼭 봐야되는 곳들이 참 여러 군데가 있지만 이 쉔브룬 동물원은 정말 꼭 한번 가보기를 추천한다. 우선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동물원이란다. 거기다 궁전 안에 있으니 그 경치가 또 얼마나 아름답겠나. 늘 가야지, 가야지 생각만 하고 막상 못 가고 있었는데, 이게 왠 걸. 복권을 사면 입장이 무료인 행사가 진행 중인 걸 알게 되어 버린 거다. 평상시 성인 입장료가 14유로인데, 1.10유로짜리 복권을 사면 공짜로 들어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횐가. 이게 모두 덕분이다. 평상시에 할인 사이트 한 두개는 알아 두면 참 유용한 것 같다. 할인은 무조건 좋아, 다 좋아. 신기하게 매표소까지만 해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는데 입구를 딱 지나자 정겨운 동물원 냄새가 났다. 이 냄새가 왜 역겹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지는지. 들어서자마자 코뿔소와 사슴이 먹이를 먹고 있었는데, 이 친구들을 보자마자 초등학생이 견학 온 듯이 갑자기 막 설레는 마음이 일었다. 뭔가 걸음걸이도 더 귀엽고 신명나진 것 같고. 이 동물들은 맹수가 아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참 울타리가 높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특히 두번 째 사진의 뿔 달린 사슴은 마음만 먹으면 당장 뛰쳐나올 수 있을 것만 같은 허술한 우리 속에 있어서 사진 찍다가 화나게 할까봐 뭔가 무서워지려고까지 했다. 사람들 걸어다니는 곳에 새가 나와 있지를 않나. 정말 가까이서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동물원의 꽃은 맹수가 아니겠나. 호랑이, 사자님이 보고 싶어서 안내도를 확인해봤다. 동물원이 어찌나 큰 지. 먹고 쉬고 하면서 놀면 문 닫을 때까지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호랑이는 너무 구석탱이에 숨어 있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재규어와 사자는 비교적 가까이서 잘 볼 수 있었다. 동물원에 오면 늘 느끼는 거지만, 드넓은 벌판에서 사냥하고 살아야 하는 동물들을 너무 작은 우리 속에 가둬두고 구경하는 것이 참 가혹한 것 같다. 특히 재규어는 혼자 있어서 그런지 더 작은 우리에 있는 것 같았고, 정말 답답해 보였다. 사자들도 지쳐서 잠만 자고 있고. 사람인 나도 더운 날씨인데 털 난 동물들은 오죽 하겠나. 씁쓸한 마음을 안고 다음 동물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Imperial breakfast pavilion은 지금은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1~2년 된 인조 건물들만 있는 동물원이 아니라, 궁전 속에, 진짜 숲 속에 지어진 동물원이라는 것을 작은 디테일들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게 쉔브룬 동물원의 진짜 매력이다. 하마도 코알라도 자고 있는 점심 무렵, 기린들은 풀을 뜯어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렇게 크고 육중한데 왜 내 눈엔 다 귀엽게만 보일까. 아쿠아리움에도 귀요미들이 많았는데 신기하게 다 과일들을 먹고 있었다. 열대어들은 멜론을 뜯어먹고, 거북이는 바나나를 뜯어먹고. 원래 얘네들이 먹는 건 저런 음식이 아닐텐데. 먹어도 되는 건가. 나쁜 건 아닌가. 궁금한 게 많았는데 물어볼 데가 없어서 아쉬웠다. 그리고 귀요미들 중의 귀요미는 펭귄이었는데 어찌나 구경꾼들에게 애교가 많은지, 움직임도 많고 귀여워서 눈 떼기가 힘들었다. 다음은 오랑우탄과 침팬지가 살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랑우탄 한 마리밖에 없고 나머지들은 어디 있는건지 당최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외에도 쉔브룬 동물원의 유명한 판다도 자리를 비우고 있었고, 광고하던 북금곰도 아직 우리를 짓고 있는 중이어서 놓친 동물들이 꽤 됐다. 그래도 아쉬워할 수만은 없잖아. 박지선 언니 사진에 힘을 얻어서 다음 동물들에게로 고고. 아 진짜 볼수록 박지선 닮았어. 동물원 지도에서 위쪽, 숲 속 코스를 돌아 다시 처음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숲 속 동물원에는 늑대를 비롯해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가축에 해당하는 동물들의 우리가 곳곳에 있었다.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사진은 따로 찍지 않았다. 소, 닭, 토끼 같은 가축들이 있었다.) 제법 긴 코스라 둘러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그래도 울창한 나무 숲 사이로 좋은 공기를 느끼며 산책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본 곰과 원숭이들. 정말 동물들을 원 없이 본 하루 였다. 숲에서 내려와 다시 둘러보니 처음엔 동물들에게 집중한다고 보이지 않았던 경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 아래로 보이는 동물원이 너무 예뻤다. 꽃들은 또 어찌나 예쁘게 피어있던지. 냄새나고 먼지 많은 동물원이 아니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공원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워서인지 구경꾼들도 정말 많았는데, 아이들과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부터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커플, 관광객들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비록 이번에는 좋은 기회로 공짜로 구경을 하긴 했지만, 14유로의 입장료를 주고 들어왔어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답고 특별한 동물원, 정말 한 번 볼만 하지 않나. 동물원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쉔브룬 궁전의 아름다운 자태가 나를 다시 감동 시켰다. 정말 이런 궁전 속에 동물원이 있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특별한 것 같다. 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하늘 덕분에 더 특별했던 하루였다. 볼 수록 매력 있는 비엔나. 파도파도 그 매력이 끝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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