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일의 여름 밤을 책임져 줄, Film Festival 2013 (Wiener Rathausplatz)
3월의 비엔나 시청의 모습을 포스팅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땐 아이스 스케이팅 링크와 스케이트를 타려는 10대들로 시청 앞이 꽉 차 있었다. 8월의 비엔나 시청의 모습은 3월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인데, 무려 65일간이나 이어지는 필름 페스티벌 때문이다. 비엔나 필름 페스티벌 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화제가 아니고 오페라, 발레부터 팝가수의 공연까지 주로 음악과 예술에 관련 된 영상들을 상영하는 페스티벌이다. 입장료는 물론 공짜이고, 덤으로 온갖 종류들의 음식과 술을 판매하는 임시 가판대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 냄새가 얼마나 향긋한지, 일단 광장에 발을 들여 놓으면 뭐라도 먹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스테이크부터 라면까지, 골라 먹는 재미까지 있으니 여름밤 한 끼 정도는 야외에서 떼우는 것도 그럴싸 하지 않겠나.
평일 밤임을 감안하면 정말 많은 인파가 시청 앞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향긋한 음식 냄새를 뿌리치고 일단 스크린이 설치 된 시청 쪽으로 곧장 향했다. 스크린 앞에 마련 된 자리는 이미 가득 차 있었고 여기저기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여름 밤 잠못드는 영혼들이 이렇게 많군. 집에만 있지말고 더 나돌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 음식점부터 시작해서 데리야끼 전문점, 스테이크 전문점, 라면집까지 없는 게 없는 푸드코트를 구경하고 있자니, 왜 밥을 먹고 왔니, 스스로 꿀밤 한 대 먹이고 싶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 곳에 들를 계획이 아니어서 본의아니게 식사를 하고 왔는데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꼭 공복에 다시 와서 이 음식점들을 정복하리.
식사는 못해도 술은 한 잔 해야되지 않겠나 싶어서 Pfirsich Bowle를 한 잔 주문했다. Bowle는 와인이나 샴페인에 신선한 과일을 넣어 만드는 음료인데, 내가 선택한 것은 복숭아. 정말 복숭아를 잔이 넘칠 듯 담아 주는데, 퍼먹으라고 숟가락도 함께 준다. 맥주나 와인 대신 Bowle를 마시고 군것질은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대참사 발생. 이 곳 Kaiserschmarrn (카이져쉬만, 오스트리아 전통 디저트)이 그렇게 맛있다는 친구들의 꼬임에 넘어가, 먹고 말았다. 다이어트는 너나 하라며. 정말 맛있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대충 배를 (하루 저녁에 두 번) 채우고 나서 스크린 쪽으로 다시 향했다. 오페라 영상이 상영 중이었는데 알아듣진 못해도 보니 꽤 재미가 있었다. 끝까지 다 보지 못하고 중간에 일어나야 하긴 했지만, 뭔가 집에서 미드만 다운 받아보다가 오페라를 보니 뇌가 짜릿짜릿한 느낌이랄까. 요즘 너무 문화 생활을 안 해줬구나 나한테 1초간 미안해하면서 집으로 고고.
여름이면 괜시리 집에 있기 싫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나. 같은 맥주도 야외에서 마셔야 맛이 더 있는 것 같고. 그런데 내가 사는 도시에서 여름밤에 이런 다양한 행사들을 기획해준다면 정말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평소 엉덩이가 무거운 편이라 매일같이 놀러다니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 필름 페스티벌 만큼은 몇 번이고 또 오고 싶은 그런 설렘 같은 것을 느꼈다. 아직도 한 달이나 남았다니, 저기 파는 음식들 다 먹어 볼 시간은 충분해. 문화 생활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친구들과 만나 수다도 떨고, 맥주도 한 잔 할 수 있는 이 완벽한 기회를 놓친다면 당신은 바보. 여름 밤 비엔나를 방황할 일이 있다면 고민말고 시청으로 향해보자. 뭔가 정말 재미있는 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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