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s에서 F1 Grand Prix 경기 보기
지금 사는 집은 거실도 넓고, 티비도 큼직하고, 소파도 엄청 편해서 앉아서 맥주 한 잔하면서 스포츠 경기 보기에는 정말 환상적인 환경이지만, 혼자 사는 집이 아니다 보니 집에 있고 싶어도 나와야 될 때가 생긴다. 한 친구가 14명의 일가친척을 집으로 초대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거실을 뺏기게 된 상황. 그래도 F1 경기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거기다 시즌 중 가장 흥미진진한 모나코 경기가 있는 날인데. 하필 이럴 때. 췟. 아무튼 그래서 친구들에게 수소문해서 깨끗하고 화면 큰 스포츠 바를 소개 받았다. 독일어 수업 듣는 곳과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Champions (Parkring 12a – 1010 im Vienna Marriott). 이름부터 챔피언, 누가 스포츠 바 아니랄까봐.
외관부터 뭔가 스포티하다. 오늘 중계표를 확인해보니 우리가 봐야하는 F1 경기가 라인업이 딱. 위풍당당하게 딱 들어섰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없다. F1은 역시 집에서 봐야 제 맛인가.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이 넓은 바도 터져나간다고 하는데, F1은 그 정도는 아닌가보다. 아무튼 가장 비싼 노른자 땅, 그것도 메리어트 호텔 1층에 위치하고 있는만큼 환경은 매우 쾌적하다. 그리고 American Sports Bar 답게 서버들이 영어도 아주 유창하다. 맘에 들었어. 말 안통하는 비엔나 한복판에서 한줄기 빛을 만난 기분. 우선 마른 목을 축이러 라들라(Radler)를 한 잔 주문했다.역시 알콜은 대낮에 마셔야 맛있어. 그래봤자 2도짜리 반쪽 맥주지만.
점심을 거르고 간 관계로 허기도 채우기로 했다. 처음에는 나쵸 같은 핑거푸드만 시킬까 했는데 그런 걸로 채워질 허기가 아님을 직감, 오리지날 치즈 버거를 주문 했다. 음식이 나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이 놈의 인간들이 35분이 지나서야 버거를 가지고 나왔다. 꽃미남 서버가 웃으면서 사과만 안 했으면 그냥 확 따질라고 했는데. 일단 참고 먹겠다. 살찌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비주얼이지만 일단은 배가 고팠던 관계로 폭풍 흡입. 처음 음식이 나왔을 때는 뭐 이정도야 거뜬히 먹겠다 했는데 먹다보니 은근히 양이 많았다. 이 곳 음식은 다 그런 듯. 외식할 때 먹고나서 아 좀 아쉽다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나름 오랜만에 맛보는 양질의 버거. 맥날, 버거킹 버거들과는 수준이 다른 깊은 고기맛. 이런 게 버거지.
음식을 대충 먹고나서 F1을 관람했다. 어느새 사람들도 좀 모였고 뭔가 스포츠 바에 온 기분이 났다. 앞 테이블에 앉은 아저씨떼들은 아무래도 황금같은 주말에 티비 앞에 앉아 F1이나 보기에는 와이프 눈치가 보이는 중년들 같았다. 아저씨들의 모습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다 비슷한 듯. 모나코 경기였던만큼 사고도 많았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다. 경기 딜레이가 너무 많이 되서 생각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아주 볼만 한 경기였다. 페텔이 우승한 거 빼곤. 내 집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보는 거에 비하자면 번거롭고 불편했지만 한번쯤은 뭐 이런데 와서 사람 구경도 하고 버거도 먹고 하는 게 나쁜 것 같진 않다. 매번 일어나는 똑같은 일이라도 조금만 환경을 바꾸면 또 다른 느낌이지 않나. 아저씨들 사이에 껴서 F1 보기. 꽤 신선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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