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츠(Graz)의 탯줄, 무어(Mur)강
시계탑에서 내려온 뒤 시내로 향하는 길에 미처 보지 못했던 곳들을 마저 살펴보기로 했다. 그 중 첫번째 코스는 그라츠의 탯줄, 무어강. 사람들이 비엔나하면 도나우 강을 떠올리듯이 그라츠에는 무어강이 있다. 시계탑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무어강은 그라츠 시내 전체를 통과해서 흐르고 있다. 물줄기를 보내는 내내 대지, 강, 자연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면서 뭔가 경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이 무어섬(Murinsel)에 간다고 해서 처음엔 엄청 큰 강 줄기에 섬까지 있는건가, 그라츠의 여의도 정도 되는건가, 온갖 기대를 하고 따라갔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보니, 첫 번째 사진이 바로 무어섬이라는 거다. 아니 얘들이 지금 장난하나. 이게 무슨 섬이야, 그냥 물 위에 떠있는 장식품 같은거지. 그래도 나름 무어강을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이고 도시의 의미있는 랜드마크 중의 하나란다. 무어섬 내부에는 연인들만을 위한 장소도 있고, 카페도 있다. 물 위에 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감상하면서 차 한잔 마시기에 딱 좋은 장소인 듯하다. 최근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를 물바다로 만들었던 홍수사태 때문에 물줄기가 아직도 많이 거센 편이었다. 다리 위에 서서 무어섬을 감상할 때는 현기증마저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도시 한 가운데 이런 아름다운 장소가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무어섬에서 센터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커다란 교회가 보였다. 교회 앞에는 어김없이 정체모를 건축자재들이 쌓여 있었다. 이 놈의 징크스. 더 예쁜 사진은 포기, 내부 구경은 생략하고 계속 걸었다. 구석구석 거리 이름들을 보니 비엔나와 닮아 있는 이름들이 많이 있었다. 심지어 완전히 똑같은 거리 이름들도 많이 있었는데, 비엔나 출신의 친구들이 볼 때는 참 웃겼나보다. 일례로 Mariahilferstraße는 비엔나에서 가장 큰 쇼핑의 거리인데, 그라츠의 Mariahilferstraße는 정말 조그만 골목이었다. 별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또 한가지 놀라웠던 것은 무어강에 놓인 다리들 중 하나에 우리 나라 남산타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연인들의 자물쇠 행렬이 딱. 자물쇠에 서로의 이름을 적고 소망들을 적어서 다리 철망에 꼼꼼히도 채워놓고 간 것을 보니 아, 이제 말하기도 입아프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가보다.
시내 구경 중에 잠시 신발 가게에 들렀다. 친구들에게 생일 선물로 신발을 받기로 해서 구경이나 할 겸 해서 들렀는데 이것 저것 신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게 있어서 사 버렸다. 점원 언니도 친절했고 또 좀 너무 많이 신어보기도 했고. 아무튼 그런 게 있다. 여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사야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 그래도 신발은 정말 마음에 든다. Tamaris라는 이태리 브랜드인데, 중저가인 가격에 비해서 디자인도 이쁘고 질도 좋다. 고마워, 얘들아.
다음으로 향한 곳은 Mausoleum. Ferdinand II의, 말하자면, 무덤이다. 우리나라에는 “릉”이 있고, 이 곳엔 Mausoleum이 있는 것. 그라츠의 관광 포인트 중의 하나로 시계탑에 표시되어 있기도 했고, 또 우리가 가고 싶었던 대성당 바로 옆에 있었으므로 그냥 잠깐 스쳐서 지나간 거나 마찬가지.
여기가 바로 우리가 보고 싶었던 대성당인데 내부에 들어갈 수도 없고, 전체 풍경을 사진에 담을 수도 없어서 슬펐다. 벽이랑 정원만 실컷 보다 왔다. 그라츠의 골목 골목에는 비엔나에선 볼 수 없는 알록달록한 꽃들이 정말 많았다.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왔을 뿐인데도 참 분위기가 다르구나 싶었다. 특히 이 날, 대성당 정원에 있는 꽃 하나가 정말 너무 신기하게 생겨서 사진만 한 20분정도 찍었나보다 . 마이크도 됐다가 샌드백도 됐다가, 꽃 한송이에 얼마나 깔깔대고 웃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재밌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저건 대체 무슨 식물일까.
드디어 그라츠 시내의 마지막 관광 포인트, 오페라 하우스. 비엔나의 오페라 하우스에 비하면 조금 수수하다만 그래도 나름 분위기 있다. 마침 이 날 무슨 댄스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어서 정장을 한 사람들이 오페라 하우스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건물 앞 작은 분수대에서 애들이 첨벙거리며 놀고 있었는데 그냥 그 사이를 뚫고 다이빙 하고 싶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해괴하게 생긴 저 철조물은 그라츠 버전 자유의 여신상이란다.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갔으면 놓쳤을 여러가지 포인트들을 같이 간 친구들 덕분에 놓치지 않고 감상 할 수 있었다. 이래서 가이드가 필요한가보다.
하루 일정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구석구석 잘 구경한 알찬 여행이도 했다. 그라츠라는 도시 자체가 그렇게 크지도 않지만 이미 그라츠 시내를 제 집 앞마당 보듯이 훤히 꿰둟고 있는 친구 덕분에 가장 효과적인 코스로 구경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생일 같은 중요한 날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을 볼 수 없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그래도 이렇게 물 건너 다른 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나만을 위한 여행을 마련해주니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이 곳에 머무르는 동안은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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