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er-Welsbach Park, 도심 한 복판에서 즐기는 조깅

한국에 있을 때는 주로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다. 마땅히 밖에서 운동 할 데도 없고, 밖에서 운동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혼자 하기도 뻘쭘하고. 사실 공기도 별로 안 좋고. 차들 다니는 길은 위험하고. 지루함을 달래려고 티비를 봐가며 사방이 막힌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게 어찌보면 처량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땅히 다른 수가 없어서 그런대로 즐겨했다. 하지만 비엔나에 와보니 거리가 온통 조깅하는 사람들인거라. 하나 같이 쫄쫄이 바지를 입고 공원이며 궁전이며 장소를 불문하고 조깅을 즐긴다. 물론 거리 풍경이 우리와 많이 다르기는 하다. 8차선 도로 같은 것도 없고, 스모그도 없고, 하늘은 높고, 구름도 많고, 거리에 또 나무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경치 구경하면서 뛰기에 심심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나도 한번 해봤다. 쫄쫄이 입고 밖에서 뛰기.

jogging1jogging2원래 계획은 쉔브룬 궁전으로 가서 조깅하는 거였다. 집에서 워낙 가깝기도 하고, 쉔브룬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도 하고. 궁전을 가로지르며 조깅하는 쾌감을 맛보려 하는 찰나, 이전에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길가 반대편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도 많고 잔디도 깔려 있는데, 혹시 공원인가. 저쪽으로 한번 가봐 말아. 고민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신호가 바꼈고 나의 발걸음은 이미 공원(?)쪽으로. 예상은 딱 들어맞았고  생각보다 쾌적한 공원 환경에 빠져 바로 뛰기 시작했다. 아니 개똥 치우는 여자도 저렇게 날씬한데. 갑자기 막 힘이 불끈 불끈 솟아나는 것 같았다. 야외에서 뛸 때의 포인트는 일단 최대한 천천히 힘들이지 않고 뛰는거다. 그리고 탈진하지 않기 위해선 달리기를 시작하기 1 시간 정도 전에 물도 많이 마셔둬야 한다. 음악은 듣되, 주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볼륨으로 들어야 하고, 되도록이면 파트너와 함께, 불가피 하게 혼자 뛰어야 한다면 꼭 휴대폰을 지참해야 한다.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jogging3 jogging4 jogging5첫날 조깅은 당연히 힘들었다. 하지만 몇 번 연달아 뛰기를 반복하니 조금씩 야외에서 뛰는 것이 몸에 익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아직도 멀었다. 기껏해야 30~40분 정도 그것도 아주 천천히 뛰는 수준. 이거 뭐 지방이 타는지 마는지 감도 안올 정도니 좀 더 노력해야 한다. 야외 조깅의 한 가지 단점. 비오면 못 뛴다. 완벽히 짜여진 다이어트 계획이 있다면 당연히 헬스장에 가는 것이 안전하다. 하지만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저런 멋진 풍경들은 못 본다. 햇살과 바람을 느끼면서 자연과 하나되는 그런 느낌도 못 느낀다. 일단, 한국에서는 참 하기 힘들다. 우선은 내가 비엔나에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할 엄두도 내게 된 것 같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느낌이랄까. 얼마나 더 열심히 하게 될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이 곳에 있는 동안은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운동하는 사치를 좀 더 누리도록 해 봐야겠다.

Gumball 3000 비엔나를 방문하다

유럽에 살아서 좋은 점은 티비로만 보던 외쿡 행사들을 실제로 구경할 기회가 훨씬 더 많다는 것. 물론 이것도 다 돈이 있어야 즐기는 거긴하다. 지난 5월 23일, 유투브 비디오로만 구경하던 Gumball이 비엔나를 거쳐간다고 해서 구경에 나섰다. 독일어 코스가 끝나고 나서 Entry 장소로 향했더니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 좀 더 일찍 왔으면 좋았겠지만 어차피 비싼 차나 구경해볼까 온 것이므로 크게 상관 없었다. Gumball 3000은 1999년 Maximillion Cooper가 최초로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불법 카 레이싱(racing)이었고 지금은 합법적인 카 랠리(rally) 행사이다. 참가비만 무려 30,000 ~ 40,000 유로에, 최고급 자동차는 필수 옵션. 참가 하고 싶다고 아무나 받아주지도 않는단다. 말 그대로 돈 지랄. 그래도 나름의 재미와 매력이 있는 듯하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즐기며 사는 거지 돈지랄한다고 무조건 나쁘게 볼 필요는 없지 않나.

gumball1gumball2gumball3처음엔 Volksgarten으로 가서 무언가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곧 이곳은 주차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시청 쪽으로 좀 더 움직여 보기로 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차들을 둘러싸고 구경 중이었다. 대체 이게 얼마, 집이 몇 채. 서민들은 구경이나 하자.

gumball4gumball5gumball6gumball7gumball8gumball9gumball10딱 저 지점에서 차를 돌리면 모든 차들이 갑자기 슝~하고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 이게 Gumball의 팬 서비스인가. 내 차의 호스 파워는 이 정도야. 덕분에 제대로 된 사진은 한 장도 건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 번도 본 적 없던 광경이라 즐거웠다. 대부분의 차들이 아주 시크하게 구경꾼들을 지나쳤지만, 몇몇은 되려 구경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기도 하고,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마지막 사진 속 남자는 구경꾼들에게 유난히 친절했는데, 알고보니 정식 참가자가 아니고 행사 같은 거에 당첨 되어서 랠리에 참여하게 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차에 정식 번호판 대신에 엄청난 광고 스티커들을 붙이고 있었다. 아, 그리고 포스트를 준비하다가 한가지 알게 된 사실인데, Gumball은 지난 2008년에 평양에 정식으로 초대되어서 랠리를 했다고 한다. 김정일 동무의 초대를 친히 받았다니 대단하다. 솔직히 엄청난 Gumball 팬은 아니라서 그냥 인파 속에 묻혀서 함께 구경하는 정도였지만, 함께 간 M은 Gumball 랠리에 엄청난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신나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에겐 여전히 돈 지랄. 여튼 새로운 것을 알고 보는 것은 언제나 신나는 일이다. 올 한 해, 더 새로운 경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를.

유럽에서 가장 큰 축제, Donauinselfest 2013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의 규모를 감안하면 비엔나에는 정말 큰 규모의 행사들이 많이 열리는 편이다. 지난 달 열린 Lifeball (HIV와 AIDS를 후원하는 유럽 최대 규모의 자선 행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고, 오늘 소개할 Donauinselfest 또한 그러하다.  이 작은 도시가 유럽 최대 규모의 행사를 몇 개씩이나 개최한다는 것이 이미 매우 놀라운 일이다. Donauinselfest는 말 그대로 Donauinsel에서열리는 유럽 최대 규모의 야외 음악 축제이다. 비키니 탑만 입은 젊은 여성들부터 술에 취한 10대들까지 말 그대로 젊은이들의 축제다. 더욱 파격적인 것은 입장료가 없는 축제라는 점. 터질 듯한 젊은 혈기와 DJ들의 멋진 음악 그리고 유명한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일부러 축제를 찾는 사람들도 있단다. 축제는 금,토,일 (6월 21일~6월 23일) 3일간 열렸는데 나는 마지막 날 저녁에서야 찾아가 보았다. 물론 엄청 후회했다. 3일 내내 갈 껄 하고.

donauinsel4donauinsel2donauinsel3U4 NeueDonau역에 내리자마자 축제의 후끈함이 느껴졌다. 비엔나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았나 싶을 만큼 북적이는 풍경이었다. 처음 축제에 입장해서는 작은 스테이지들을 둘러보고 간식을 사 먹으며 짧은 투어를 했다. 사진에 보이는 저것은 Langos라고 하는 오스트리아의 불량식품 같은 것인데 반죽을 넙적하게 만들어 기름에 튀긴 뒤 마늘 소스를 발라 먹는 음식이다. 가격은 단돈 3유로. 절대 혼자서 먹을 수 없는 사이즈. 한 입 베어물면 기름이 쫙 나오는 것이 정말 기가 막힌 맛이다. 하지만 자주 먹었단 돼지 되기 십상. 맛만 봐야지 맛만.

donauinsel5donauinsel6간식을 사먹고 노는 동안 해가 저물어갔다. 낮에 왔으면 또 나름의 재미가 있었겠지만, 이 날 날씨가 너무 더웠으므로 패스. 축제에서 감상하는 일몰은 또 왜 이렇게 멋있나.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 맞나 싶을만큼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저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감상하는 일몰이라서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정말 하늘 아름답다.

donauinsel7donauinsel8이 날 우리가 감상한 메인 무대는 “HURTS”였다. 사실 누군지 잘 몰랐는데 노래를 들으니 한 두곡 정도는 알겠더라. 나보다 더 어린 친구들은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이미 스테이지 앞을 꽉 채우고 있었다. 늙은이는 뒤로 가야지. 그래도 스크린도 잘 보이고, 내 위치에서도 (나의 좋은 시력으로는) 밴드 멤버들의 얼굴이 잘 보였다. 내가 알고 좋아하는 밴드가 왔더라면 아마 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쿵쿵하는 사운드가 심장을 울리는데,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폭발적인 분위기. 이 날 18,000명이 이 스테이지를 감상했다고 한다. 정말 어마어마한 인파다. 사실 이 많은 인파가 몰리는데도 큰 사고가 생기지 않는 것이 더 대단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엄청난 경찰 인력이 동원 되고, 곳곳에는 앰뷸런스들이 대기 중이이었다. 도시가 얼마나 꼼꼼하게 행사를 관리하는 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donauinsel9 donauinsel10서양의 흔한 간식 사이즈. 도대체 이거 몇 명이서 먹으라고 파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얼굴보다 큰 소세지를 보고있자니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 이런 간식 가판대가 위치하고 있었는데 정말 가격이 비싸다. 물 한잔을 3~4유로에 파니 뭐 말 다했지. 입장료가 없는 대신 우리가 감안해야할 부분인가보다 했다. 그리고 보통 맥주나 다른 음료를 사면 플라스틱 컵을 주는데, 1 유로의 보증금을 내야한다. 컵 보증금을 돌려받는 가판대도 곳곳에 있으니 불편함은 없었다. 아무튼 뭐 다 편리하고 다 안전하고 다 깨끗했다. 최고의 환경.

donauinsel11 donauinsel12마지막으로 작은 규모의 DJ 스테이지들을 조금 더 둘러 본 후 집으로 귀가했다. 12시에 축제가 정식으로 종료되는데 그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지하철을 못타 집에 못가기 쉽상. 아쉽지만 조금 빨리 떠나기로 했다. 우리가 떠날 때는 DJ Antoine의 무대가 한창이었는데, 정말 신나는 음악들이 나오고 있어서 떠나기가 아쉬웠다. 유럽에는 참 DJ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다.

밤 늦도록 밖에서 놀자니 피곤하기도 했지만 정말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경험을 한 것 같다. 자유롭게 야외에서 음악과 맥주를 즐기고 어마어마한 인파들 속에 섞여서 그 열기를 공유하는 것. 왠만한 규모의 콘서트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나에게만은 최고의 휴양지, Balconia.

처음 친구들과 지낼 집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이 바로 발코니이다. 친구 중 하나가 꼭 발코니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그러자고 한 것. 물론 쉽지는 않았다. 발코니가 멋지면 집이 구리고, 집이 멋지면 발코니가 없고. 발코니가 있어도 예쁘지 않거나 불편하고. 하지만 결국 우리만의 아지트를 찾았고 피터지는 노력을 거쳐 비로소 아름다운 발코니를 가진 집에 살게 되었다.

balcony1제일 처음 집을 봤을 때 휑했던 발코니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실 그 때는 별 기대도 없었다. 발코니가 대체 뭐길래 이렇게 비싼 돈을 줘야 하는건가. 특히 그 때는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도 않은 2월 말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추워죽겠는데 발코니가 왠말. 창문도 열기싫은 마당에 말이다. 하지만 이 작은 장소가 하나씩 우리 만의 아이디어로 채워지고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하자 나는 곧 나의 우려들이 쓸 데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balcony2balcony5가장 큰 변화는 나무 바닥을 깔면서부터 시작 되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햇빛이 강렬해지면 돌바닥은 아무래도 뜨겁고 불편해질거 생각, 이케아에 파는 나무타일을 깔기로 결정했다. 사실 친구들이 나무 바닥을 사서 온 것을 보고도 아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발코니가 뭐라고, 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바닥이 조금씩 완성되자 생각보다 너무 아늑한 느낌에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점차 발코니에 살아있는 식물들이 하나 둘 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친구와 바닥에 퍼질러 앉아 꽃과 야채들을 화분에 옮겨 심을 때만 해도 과연, 얘네들이 날 행복하게 해줄까, 했었는데. 집을 꾸미고 장식하는 거에 대한 나의 관심이 이 곳에 있는 친구들보다 아무래도 좀 적었던 것 같다.

balcony3balcony4balcony6추운 겨울이 지나가자 드디어 나의 발코니에 녹음이 만발. 대체 이 나무는 뭘까 했었는데 여름이 되자 비로소 나무의 용도가 드러났다. 꽃들이 피어나고, 햇빛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발코니아(발코니를 나라 이름처럼 부르는 것으로 우리 나라의 방콕 같은 표현)의 시작인가.

balcony7 (1)balcony7 (2)balcony7 (3)생각치도 못했던 부수적인 기쁨도 발생했다. 직접 기른 야채를 먹는 것. 이 아이들을 심을 때만 해도 사실 얘네는 언제 죽을라나 조마조마 했었는데. 선인장도 죽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식물을 간수한다는 것이 참 부담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서 열매를 맺어 주고 직접 따서 요리해 먹을 수 있게 해주니,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 특히나 망친 것 같았던 오이가 죽지 않고 열매를 맺은 걸 발견한 날은 무슨 죽은 자식이 살아돌아온마냥 감동받았다. 내가 생각 해도 좀 오바인 것 같긴 하다.

balcony8 balcony9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발코니의 하이라이트는 특별한 데 가지 않고도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남들처럼 비키니 입고 강가나 공원에 가서 남의 시선을 신경쓰며 하는 일광욕과는 클래스가 다른 아늑하고 특별한 경험. 욕조에 찬물 받아놓고 첨벙거리고 놀다가 발코니로 뛰어나와 바로 햇빛을 즐기자니, 아 이런게 지상낙원. 휴가는 뭐하러 가나. 이럴려고 우리가 그 비싼 렌트를 내는건데. 지난 집들이 때 친구들이 마련해준 바베큐 그릴. 이제 바베큐만 하면 우리의 발코니 사용도는 100%가 될 것 같다.

도심 속 아름다운 궁전, 쉔브룬 궁전(Schloß Schönbrunn)

우리나라의 궁하면 경복궁이 떠오르듯이 비엔나의 궁전하면 바로 쉔브룬 궁전이다. 쉔브룬 궁전은 아름다운 정원으로도 유명하지만 궁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큰 공원이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운 좋게도 쉔브룬 궁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지내고 있어서 날씨 좋은 때 산책 삼아 종종 이 곳을 거닐곤 한다. 1년 365일 관광객들과 시민들로 꽉 차 있는 궁전. 여름 밤이면 클래식부터 롹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콘서트가 열리는 궁전. 아끼고 쳐다만 보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공존하는 살아있는 궁전이다.

schonbrunn1schonbrunn2schon이 곳을 처음 방문 했던 것은 2009년. 첫인상은 와 너무 넓다. 빨리 여기 보고 다른 데도 봐야 되는데 너무 커서 봐도봐도 끝이 안 나던게 생각난다. 끝은 보이는데 끝까지 갈 엄두가 안나는 정도의 사이즈랄까. 내부에 있는 동물원도 구경하고, 식사도 내부에서 해결하고, 콘서트도 보고, 공원도 다 둘러보려면 사실 하루를 꼬박 다 써도 모자랄 판.  그냥 궁전을 포함해 공원 산책만 해도 반나절이 후딱 지나간다. 그만큼 큰 규모의 궁전이다. 구석구석 돌아보니 더 감탄이 나온다. 관리가 안되어 있거나 못난 곳이 한군데도 없다. 그냥 찍어도 다 그림이 될만큼 아름답다.

schonbrunn3schonbrunn4이 곳이 아름다운 쉔브룬 궁전의 정원. 한쪽 끝과 다른 끝이 얼마나 먼 지 두 장의 풀 샷을 찍기 위해 정말 열심히 걸었다. 이 두 장의 풍경이 광광객들이 가장 많이 찍는 사진의 풍경이라고 보면 될 듯. 2월에 처음 비엔나에 도착해서 찾았던 쉔브룬 궁전은 눈발을 머금은 하늘과 추운 날씨 때문에 이렇게 예쁘지 않았었는데. 날씨가 따뜻해지자 꽃들도 만발하고 하늘도 너무 예뻐서 인물이 난다, 인물이 나. 여기까지가 여태 내가 구경했던 쉔브룬 궁전의 풍경. 저 뒤로 보이는 언덕으로는 올라갈 엄두도 못 냈었는데 오늘은 얘기가 다르다. 여기까지 왔고 시간도 많으니 당연히 올라가봐야지.

schonbrunn5schonbrunn6schonbrunn7조금씩 언덕을 오를 때마다 쉔브룬의 풍경이 조금씩 더 많이 보인다. 끝까지 올라가면 대체 어떤 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다려졌다. 아 정말 오늘따라 날씨가 왜 이렇게 좋은거지. 하늘과 구름과 정원의 나무들과 궁전의 풍경이 그냥 한폭의 그림 같다. 황홀해라.

schonbrunn8schonbrunn9schonbrunn10제일 처음 정상에 올랐을 때 보였던 것이 바로 이 건물과 물에 비친 하늘의 뷰. 여기가 이승인지 무릉도원인지 구분되지 않을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The Gloriette라고 하는데 부속건물이란 뜻이란다. 높은 지대에 주변을 보기 좋은 모양으로 서 있는 폼이 우리나라의 정자 같기도 하다. 건물 위에 오르면 좀 더 높은 곳에서 쉔브룬 궁전과 도시의 뷰를 감상할 수도 있다. The Gloriette에 넋이 빠져있다가 뒤돌아 궁전을 바라보니, 이게 바로 진정한 쉔브룬의 진정한 뷰다. 궁전 건물과 비엔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이 곳에 누군가가 살았던 당시를 상상해보니 정말 더 짜릿하다. 몇 백년 전에는 훨씬 더 장엄한 느낌이었겠지.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문구가 저렇게 떡하니 있는데도 사람들은 잔디밭에 드러누워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 중이었다. 얼핏 보면 자유롭고 아름다운 풍경같지만 그래도 엄연히 불법. 정말 하지 마라는데 참 말 안 듣는다.

schonbrunn11schonbrunn12schonbrunn13들어올 때는 정원 쪽으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조금 다른 쪽으로 나가기로 하고 보지 않았던 곳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울창하게 궁전을 메우고 있는 나무들 사이로 무언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다람쥐다. 청설모 같았다. 풀냄새가 그윽하니 공기가 다르다 싶더니 이런 애들도 살만큼 깨끗한 곳인가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나 나올 법한 미로 같은 나무 숲도 구경하고, 구석 구석 숨어있는 조각들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쉔브룬 투어가 끝이 났다.

도심 한 가운데 이런 큰 규모의 아름다운 궁전이 있다는 건 정말 감동적인 일이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운 장소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오픈하고 활용하는 것도 정말 잘하는 일인 것 같다. 물론 이런 외국의 궁전들은 우리 나라의 궁과 비교했을 때 좀 인위적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자연 속에서 마치 그 일부분인듯이 조화되어 있는 우리 나라의 고 건축물들이 가진 매력이 이 곳에는 없다. 하지만 우리와는 다른 그것이 또 다른 멋이 아니겠나. 아이러니컬 하지만, 오히려 밖에 나와있을 때 우리의 것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더 뼈져리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라츠(Graz)의 탯줄, 무어(Mur)강

시계탑에서 내려온 뒤 시내로 향하는 길에 미처 보지 못했던 곳들을 마저 살펴보기로 했다. 그 중 첫번째 코스는 그라츠의 탯줄, 무어강.  사람들이 비엔나하면 도나우 강을  떠올리듯이 그라츠에는 무어강이 있다. 시계탑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무어강은 그라츠 시내 전체를 통과해서 흐르고 있다. 물줄기를 보내는 내내 대지, 강, 자연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면서 뭔가 경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graz38graz39graz40graz41친구들이 무어섬(Murinsel)에 간다고 해서 처음엔 엄청 큰 강 줄기에 섬까지 있는건가, 그라츠의 여의도 정도 되는건가, 온갖 기대를 하고 따라갔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보니, 첫 번째 사진이 바로 무어섬이라는 거다. 아니 얘들이 지금 장난하나. 이게 무슨 섬이야, 그냥 물 위에 떠있는 장식품 같은거지. 그래도 나름 무어강을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이고 도시의 의미있는 랜드마크 중의 하나란다. 무어섬 내부에는 연인들만을 위한 장소도 있고, 카페도 있다. 물 위에 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감상하면서 차 한잔 마시기에 딱 좋은 장소인 듯하다. 최근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를 물바다로 만들었던 홍수사태 때문에 물줄기가 아직도 많이 거센 편이었다. 다리 위에 서서 무어섬을 감상할 때는 현기증마저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도시 한 가운데 이런 아름다운 장소가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graz43graz44graz42graz45graz46무어섬에서 센터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커다란 교회가 보였다. 교회 앞에는 어김없이 정체모를 건축자재들이 쌓여 있었다. 이 놈의 징크스. 더 예쁜 사진은 포기, 내부 구경은 생략하고 계속 걸었다. 구석구석 거리 이름들을 보니 비엔나와 닮아 있는 이름들이 많이 있었다. 심지어 완전히 똑같은 거리 이름들도 많이 있었는데, 비엔나 출신의 친구들이 볼 때는 참 웃겼나보다. 일례로 Mariahilferstraße는 비엔나에서 가장 큰 쇼핑의 거리인데, 그라츠의 Mariahilferstraße는 정말 조그만 골목이었다. 별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또 한가지 놀라웠던 것은 무어강에 놓인 다리들 중 하나에 우리 나라 남산타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연인들의 자물쇠 행렬이 딱. 자물쇠에 서로의 이름을 적고 소망들을 적어서 다리 철망에 꼼꼼히도 채워놓고 간 것을 보니 아, 이제 말하기도 입아프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가보다.

graz49graz50시내 구경 중에 잠시 신발 가게에 들렀다. 친구들에게 생일 선물로 신발을 받기로 해서 구경이나 할 겸 해서 들렀는데 이것 저것 신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게 있어서 사 버렸다. 점원 언니도 친절했고 또 좀 너무 많이 신어보기도 했고. 아무튼 그런 게 있다. 여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사야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 그래도 신발은 정말 마음에 든다. Tamaris라는 이태리 브랜드인데, 중저가인 가격에 비해서 디자인도 이쁘고 질도 좋다. 고마워, 얘들아.

graz51graz52다음으로 향한 곳은 Mausoleum. Ferdinand II의, 말하자면, 무덤이다. 우리나라에는 “릉”이 있고, 이 곳엔 Mausoleum이 있는 것. 그라츠의 관광 포인트 중의 하나로 시계탑에 표시되어 있기도 했고, 또 우리가 가고 싶었던 대성당 바로 옆에 있었으므로 그냥 잠깐 스쳐서 지나간 거나 마찬가지.

graz53graz54graz55graz56여기가 바로 우리가 보고 싶었던 대성당인데 내부에 들어갈 수도 없고, 전체 풍경을 사진에 담을 수도 없어서 슬펐다. 벽이랑 정원만 실컷 보다 왔다. 그라츠의 골목 골목에는 비엔나에선 볼 수 없는 알록달록한 꽃들이 정말 많았다.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왔을 뿐인데도 참 분위기가 다르구나 싶었다. 특히 이 날, 대성당 정원에 있는 꽃 하나가 정말 너무 신기하게 생겨서 사진만 한 20분정도 찍었나보다 . 마이크도 됐다가 샌드백도 됐다가, 꽃 한송이에 얼마나 깔깔대고 웃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재밌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저건 대체 무슨 식물일까.

graz57graz58드디어 그라츠 시내의 마지막 관광 포인트, 오페라 하우스. 비엔나의 오페라 하우스에 비하면 조금 수수하다만 그래도 나름 분위기 있다. 마침 이 날 무슨 댄스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어서 정장을 한 사람들이 오페라 하우스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건물 앞 작은 분수대에서 애들이 첨벙거리며 놀고 있었는데 그냥 그 사이를 뚫고 다이빙 하고 싶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해괴하게 생긴 저 철조물은 그라츠 버전 자유의 여신상이란다.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갔으면 놓쳤을 여러가지 포인트들을 같이 간 친구들 덕분에 놓치지 않고 감상 할 수 있었다. 이래서 가이드가 필요한가보다.

하루 일정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구석구석 잘 구경한 알찬 여행이도 했다. 그라츠라는 도시 자체가 그렇게 크지도 않지만 이미 그라츠 시내를 제 집 앞마당 보듯이 훤히 꿰둟고 있는 친구 덕분에 가장 효과적인 코스로 구경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생일 같은 중요한 날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을 볼 수 없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그래도 이렇게 물 건너 다른 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나만을 위한 여행을 마련해주니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이 곳에 머무르는 동안은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