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슈퍼마켓, 이곳이 바로 지상 낙원

처음 비엔나에 도착해서 한 일주일 간은 한국 음식 생각이 전혀 안 났다. 원래 입맛도 토종이 아닌데다가 딱히 먹고 싶은 음식도 없었다. 하지만 한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슬슬 매운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워낙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터라, 볼로네즈 소스만 봐도 얼큰한 김치찌개 생각이 났다. 그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살지. 한국 사람은 한국 음식 없이는 못사는 거였다. 자신만만하게 내 입은 웨스턴 스타일이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결국은 나도 술먹고 난 다음 날 뜨끈한 해장국이 먹고 싶은 한국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다. 무슨 자신감으로 라면 하나 안들고 왔나 초조해지려던 찰나에 지난 번 여행 중에 들렀던 한인 슈퍼가 떠올랐다.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는게지.

koreansuper 1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이 곳은 바로 낙원 슈퍼 (NAKWON Supermarkt). 주소지는 Zieglergasse 12/1 1070 Vienna이다. Zieglergasse는 쇼핑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Mariahilferstraße의 샛길 같은 작은 골목으로 낙원 슈퍼는 센터 중의 센터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말씀. 찾아가는 길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koreansuper 2 koreansuper3 koreansuper4냉동 음식에서부터 김치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한인들의 지상낙원! 일본음식을 비롯한 몇 가지 종류의 다른 아시안 푸드들도 구비하고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곳은 한국 슈퍼. 정말 한국의 동네 슈퍼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친숙한 느낌이었다. 오뎅이나 맛살 같은 것들은 냉동된 것밖에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있다는 게 어딘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야지. 매일 한국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을 수 없는 형편이라면 난 이제부터 요리를 해야만 한다. 비장한 느낌마저 들었다.

koreansuper6 koreansuper7절대 빠뜨릴 수 없는 라면과 김치 그리고 간장, 고추장 같은 기본 양념들을 사고 나오던 길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새우깡도 한 봉지 샀다. 소주랑 먹어야지, 하고. 새우깡에 소주라니, 한국에라서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괜찮아, 여긴 오스트리아니까. 내 나라 내 것들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구나, 김치 한 봉지에 이렇게 행복해 질 수 있다니, 사람 참 간사하다 싶었다. 한국에서였다면 친구들 만나서 파스타나 쌀국수 같은 다른 나라 음식만 찾아 다녔을텐데, 여기선 잘 먹지도 않던 김치가 이렇게 귀하구나. 이래서 타향살이를 해봐야 집 편한 줄 아는 건가보다.

koreansuper8이 날 이후 일 이주에 한번씩은 꾸준히 찾고 있는 낙원 슈퍼. 나에게만은 비엔나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많은 것이 궁금하다면, 낙원 슈퍼의 웹 사이트를 방문해보자. NAKWON Supermarkt in Wien.

당신의 허기를 채워줄 점보 사이즈 음식점, “Centimeter”

넉넉치 않은 주머니 사정때문에 자주 외식을 하지는 않지만 가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는 종종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Centimeter는 저렴한 가격과 넉넉한 양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꽤 유명한 체인 레스토랑이다. 위 사진에서 보이듯이 내가 방문했던 곳은 Centimeter Ⅶ로 Währinger Gürtel 1, Vienna에 위치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U4 Alserstraße에서 내리면 쉽게 찾을 수 있다.

centimeter 1Centimeter는 M이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절친인 V와 즐겨 찾던 레스토랑이라고 한다. 그 때만 해도 가격이 더 저렴한 레스토랑에 속하는 편이어서 정말 저렴하게 음식과 맥주를 양껏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많이 비싸졌다고 투덜거렸지만 물가를 감안하면 아직도 저렴한 레스토랑인 편이다.

centimeter 2갈증을 달래기 위해 Almdudler 한 병을 시켰다. Almdudler는 오스트리아의 음료로 이 곳에서는 콜라나 사이다 만큼 인기가 좋은 음료이다. 맥주와 5:5 비율로 섞으면 맛있는 Radler를 맛 볼 수도 있다.

centimeter 3드디어 주문한 Schnizel (쉬니츨) 메뉴가 나왔다. 딱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밖에서 쉬니츨을 사 먹을 때마다 다 먹기도 힘든데 왜 꼭 두 조각씩을 파나 불평하곤 했었는데 이 곳에 쉬니츨은 조각 수가 문제가 아니고 그 크기부터 입이 딱 벌어졌다. 사진 상으로는 잘 티가 안 날지도 모르겠지만 성인 남자 2명이 먹어도 거뜬할 양이었다. 특히 감자튀김은 M과 함께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낼 수가 없었던 양. 혹시라도 Centimeter에서 주문을 할 예정이라면, 그리고 당신이 양이 크지 않은 여성이라면, 꼭 둘이서 하나만 시킬 것을 권한다. 물론 남은 음식을 싸주기도 하지만 식으면 맛 없으니까.

가격은 10유로보다 조금 더 주었던 것 같다. (이 곳에서는 통상 20%의 팁을 주어야 한다.) 보통 Take-out 쉬니츨 가게에서도 1인분에 7~8유로를 내야하는 것을 감안하면 뭐 거저 먹는 수준이다. 물론 최상급의 고기는 아니었다. 꼭 최상급의 쉬니츨을 먹어야 한다면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한 접시에 20유로짜리 송아지 쉬니츨을 먹으면 그만. 하지만 주머니 사정 빡빡한 백패커들이나 학생들에겐 최상급의 질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배불리 먹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그런 이들에게는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싶다. Centimeter 레스토랑이 궁금하다면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자. Die Centimeter, Wien.

주 오스트리아 대한민국 대사관 방문

해외에 체류할 때 가장 먼저 파악해야되는 것이 바로 대사관의 위치와 연락처이다. 체류허가 신청 때문에 꼭 방문했어야 하는 거긴 하지만, 여러모로 유익했던 방문이었다. 외관상으로 한국에 있는 다른 나라 대사관들과 가장 달랐던 점은, 큰 빌딩에 위치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일반 가정집 같은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 자체가 서울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외국에 있는 친척집을 방문하는 것처럼 뭔가 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embassy 1멀리서 대사관 건물이 보이자 뭔가 포즈가 취하고 싶어졌다. 대사관의 주소는 Gregor-Mendel-Strasse 25, 1180 Wien, Austria, 전화번호는 +43-1-478-1991, 업무 시간은 오전 9시에서 12시 반, 2시에서 5시까지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면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자. 주 오스트리아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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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문의 목적이기도 했던 체류 허가에 대한 정보는 이렇게 벽면에 공지되어 있었다.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범죄기록회부서는 한국에서 발부 후 외교통상부에서 아포스티유를 받아서 가지고 와야 한다. 일이 많아 보이지만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체류하기 위한 절차이니 번거롭더라도 꼭 필요한 절차이다. 체류 허가 신청은 대사관에서 서류들을 확인 받고, 출생증명서를 발부 받은 후 오스트리아 이민국에서 하면 된다. 일이 여간 많은 것이 아니다.

coffee ordering 1 coffee ordering 2 coffee ordering 3대사관에서 서류를 신청하고 기다리고 하느라 진이 빠졌는지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스타벅스 라든지 커피빈이라든지 하는 큰 커피 브랜드는 찾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곳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영어로 주문해도 다 알아듣지만, 왠지 독일어로 주문해보고 싶어져서 더듬더듬 주문을 해봤다. “Ich möchte einen Milchkaffee trinken.” 우리 나라 말로 하자면, “저는 카페라떼 한잔이 마시고 싶습니다”. 뭔가 부자연스럽고 불필요하게 완전한 문장이긴 하지만 뭐 어때. 난 외국인이잖아. 서툴러도 시도해보는게 중요한거지, 하고 혼자 위안을 삼았다. 추운 날씨에 따끈한 커피 한 잔이 스트레스와 피로를 녹여주는 것만 같았다.

눈코 뜰 새 없이 시작 된 입학 및 비자 준비

비행의 피로가 풀리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나에게는 당장 해결해야할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입학 절차. 입학이 완료 되지 않으면 체류허가 또한 신청할 수가 없었기에 나름 긴급한 상황이었다. 비엔나 대학의 시스템 변경으로 한국에서 미리 입학 허가를 받고 비자를 받아 오는 것이 불가능 하게 되어서 오스트리아에 도착 후 직접 체류 허가를 신청해야하는 모험이 불가피한 상태였다. 오스트리아는 어학 연수만으로 체류허가를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대학 정식 입학 절차를 거친 뒤 어학 코스를 들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독일어 능력이 없어도 대학 입학이 가능하고, 대학에서 독일어 코스를 제공한다.) 거기다가 온라인으로 입학 허가를 신청한 뒤에 직접 대학을 방문 해서 듣고자하는 어학 코스를 별도로 신청해야 하고, 은행과 해당 기관을 직접 돌며 입학 절차를 마무리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기도 하다. 새삼 우리 나라의 “빨리 빨리” 시스템이 얼마나 편리한 것이었는지 확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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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 조언으로 입학 사무소가 문을 열기도 전인 8시 50분에 대학 건물에 도착. 주변을 돌아보니 나만큼이나 부지런을 떤 학생들이 한 둘 정도 더 있는 듯 했다. 화장은 커녕 눈꼽만 겨우 떼고 서둘러 나온 모습이 챙피할까 걱정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추레한 행색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9시가 땡 하면, 뒤로 보이는 기계에서 번호표를 뽑을 수가 있고, 번호표에 표시 된 방으로 들어가면 사무 업무를 볼 수가 있다. 막상 사무실에 들어가면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대학 직원들이 앉아 있지만, 사무실에 들어가기까지의 세부적인 절차는 그 누구도 영어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아는 이 하나 없이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자칫 막막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대학 사무실에 해당 서류들을 제출하면 독일어 코스 비용 납부 고지서를 주고, 그 고지서를 들고 은행에 가서 직접 납부를 한 다음, 그걸 또 자기가 소속된 해당 부서에 제출 해야지만 신청이 완료 된다. 등록금도 클릭 한번으로 다 해결 했던 한국의 대학에 비하자면 참 불편하기 짝이없다.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법. 오스트리아가 원래 이런 걸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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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1너다섯 시간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보낸 후 넋이 나간 나는 친구들과 주변 숲이나 산책하며 숨을 고르기로 했다. 아 비엔나의 3월은 어찌나 춥던지. 이 곳 사람들에게도 생소하리 만큼 올 해는 겨울이 길었다. 3월 내내 도시는 눈에 덮여 있었고, 온도는 0도 안팎을 겉돌았다. 따뜻한 봄날씨를 상상했었는데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던 건 인정해야겠다. 오자마자 봄이었으면 겨울은 못 보는건데, 겨울도 보고 봄도 봤으니 더 좋다고 생각하지 뭐. 신기하리만치 한겨울 날씨 속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체 이 사람들은 이 날씨에 밖에서 뛰고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단 말인가. 여간 오랫동안 단련되지 않고서는 힘들 일이다. 하지만 여긴 전 세계에서 스키 관광을 오는 나라, 오스트리아.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렇게 신기할 것도 없긴 하다.

forest 3산책을 마치고 근처 카페에 들른 나와 일행은 날씨를 더 제대로 즐기기 위해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뜨거운 커피와 달달한 쿠키를 해치우고 나니 몸이 노곤노곤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만큼 바빴지만, 새삼 혼자가 아닌 것에 감사하게 되는 하루였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날 위해 발 빠르게 뛰어준 M과 친구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설레는 출국 그리고 피곤한 여정…

새로운 경험과 도전은 언제나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하지만 더 이상 20살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이미 가진 것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란 여간 쉬운 결정이 아니다. 나 또한, 오스트리아로 오기까지 기나긴 시간 동안 과연 이 결정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경험만을 좇아서 내 나라를 떠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정말 오랫동안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고민했지만, 결론은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할 수 없다” 였다. 어찌됐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이 남은 젊은이 아닌가.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인생이란 것에 애초부터 답이란 게 있었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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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에 다달하는 기나 긴 비행을 마치고 비엔나 공항에 도착했던 게 벌써 세 달 전. 대한항공 직항 항공을 이용했는데 성수기가 아니여서인지 비행기 안이 텅텅 비어있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텅 빈 비행기를 타보기도 처음이다. 서너 편의 영화를 보고 두 끼의 식사를 먹고 나니 어느 덧 비엔나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마중 나온 M과 함께 친구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저녁 늦게 도착했는데도 날 위해 저녁 식사를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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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람이란 게 그런 작은 정성에 더 감동하는 법. 자칫 쓸쓸할 수도 있었던 비엔나에서의 첫날 밤은 그렇게 친구들과 떠들석하게 웃고 떠들며 지나갔다. 정말 피곤했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근심 걱정 없었던 밤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의 비엔나 여정이 시작되었던 바로 그 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이 글을 읽어주고 있는 고마운 여러분께 더 큰 재미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